무궁화, 우리 민족의 얼을 다시 깨우는 꽃 [동서울대학교 장규순 교수 칼럼]

  • 등록 2025.11.26 09: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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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우리 민족의 얼을 다시 깨우는 꽃
동서울대학교 장규순 교수 칼럼

 

 

길을 걷다 보도블록 틈새에서 얼굴을 내민 작은 들꽃 한 송이가 유난히 오래 눈길을 끈 적이 있다. 행인의 발에 밟힐까 조심스러워졌고, 그 순간 꽃이라는 존재가 주는 미묘한 위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계절 내내 자연은 우리에게 수많은 꽃을 선물하지만, 정작 우리의 꽃 무궁화는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장미와 벚꽃은 수많은 노래와 이미지 속에 가득하지만, 무궁화는 왜 이렇게 적게 불리고 적게 기억될까. 이 질문이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남았다.

 

그 생각은 결국 작품으로, 그리고 운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무궁화를 주제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에 곡을 붙여 ‘무궁무궁화’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후 무궁화 전시회, 패션쇼, 브랜드 출시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무궁화 캠페인을 스스로 시작하게 되었다. 서부간선도로에서 본 짙은 분홍빛 무궁화 한 송이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그 한 송이가 지금의 활동을 이끌었다.

 

무궁화를 디자인하며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고유성’이었다. 다양한 꽃을 디자인해 보았지만 무궁화는 조금만 변형해도 다른 꽃과 닮아버렸다. 그래서 무궁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핵심 요소인 ‘수술’과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을 유기적인 선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꽃잎 하나하나에 우리 민족의 얼, 다시 피는 힘, 꺼지지 않는 생명성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무궁화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만난 또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잊고 살던 ‘무궁화 사건’이다. 일제강점기 남궁 억 선생이 학생들과 함께 전국에 무궁화를 심으며 민족정신을 복돋우려고 했던 활동이, 일제에 의해 ‘불온사상’으로 규정되어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모곡학교에서 재배하던 무궁화 묘목 8만 주가 불태워지고, 교직원과 기독교 비밀결사 십자당 구성원들이 체포됐다.

 

일제는 심지어 “무궁화는 눈병을 일으킨다”, “무궁화를 재배하면 진드기가 꼬인다”는 악의적인 소문까지 퍼뜨리며 우리 꽃을 민족의 기억 속에서 지우고자 했다. 한 송이 꽃을 뽑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이 품은 민족정신과 저항의 상징성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무궁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겪던 역경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은 꽃이며, 광복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사실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오늘 우리의 가슴에는 어떤 꽃이 피어 있는가. 장미도 벚꽃도 아닌, 우리의 뿌리를 잇는 무궁화가 다시 피어야 한다. 내가 만든 ‘무궁무궁화’의 가사처럼, 흙 향기를 잊지 못해 피고 지고, 하늘의 숨결을 기억하려 피고 지던 무궁화의 흔적을 우리 삶 속에 되살리는 일은 단지 꽃을 재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미래 세대에게 자긍심을 물려주는 일이다.

 

지금은 제2의 무궁화 운동이 필요한 시대다. 나는 이 운동을 조용히 이어가며 묻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어떤 꽃을 가슴에 피우고 살아가고 있는가?”

 

 

약력
동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디자이너, 발명가, 시인,  
교수창업자(무궁무궁화 브랜드 론칭), 
창업 전문가, 색채전문가,
싱어송라이터(무궁무궁화 앨범 발매)
보랏빛상상뷰VIEW 유튜버

 

김인효 기자 kjc816@k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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